광기 어린 욕망과 사랑 사이, 뛰어다니며 즐기는 ’슬립노모어’ [MHN 공연직설]
뉴욕·상하이 거쳐 한국 상륙한 화제작, 사건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이머시브 공연'

(MHN 안지훈 기자) 어둑한 매키탄 호텔에 들어선 순간부터 공연은 시작된다. 아니, 공연은 그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여타 공연과 달리 객석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가 친절하게 말로 상황을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오직 몸짓과 시선, 숨소리만으로 모든 상황을 전달한다. 또 각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연극에 관객은 배우를 끊임없이 따라다녀야 한다.
이상하고 특별한 공연 '슬립노모어(Sleep No More)'.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맥베스'를 원작으로 삼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로도 익히 알려진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의 일부 요소를 차용해 만든 이머시브(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2003년 영국에서 시작돼 2009년 미국 보스턴과 2011년 뉴욕, 2016년 중국 상하이를 거쳐 지난해 한국에 상륙했다. 과거 한국 영화의 메카로 불리던 충무로 대한극장을 개조해 매키탄 호텔이란 이름의 6층짜리 맞춤 공연장을 설립, 최근 한국 공연 1주년을 맞았다.

관객은 입장과 동시에 흰색 가면을 써 얼굴을 가려야 한다. 6층짜리 호텔 건물 안에서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건 오직 20명 남짓한 배우들 뿐이다. 층수도 적혀있지 않아 현재 자신이 위치한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길이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관객은 자기 스스로를 온전히 믿고 공연을 즐겨야 한다.
배우들은 모두 흩어졌다가 만나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어떤 배우를 따라 다니다 보면, 다른 배우는 놓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놓칠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슬립노모어'는 같은 이야기가 60분씩, 총 세 차례에 걸쳐 반복되는 '루프(loop)'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한 번 마무리될 때마다 모든 배우들이 관객을 연회장으로 이끌어 만찬 장면을 보여주고, 다시 같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방식이다.
배우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고, 관객의 감정과 감상도 달라진다. 이를 만들고 결과를 감내하는 건 오로지 관객 자신의 몫이다. 이는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이론화한 '해방된 관객'과 맥락을 같이 한다. 랑시에르는 관객이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스스로 관찰하고 선택하며 해석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관객은 적극적인 탐구자이자 능동성을 지닌 주체인 '해방된 관객'이 될 수 있으며, 비로소 자신만의 경험과 시선으로 공연을 해석하고 완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슬립노모어'는 관객을 바로 이 '해방된 관객'의 지위로 격상시킬 토대가 되어준다.

'슬립 노 모어'의 원작인 '맥베스'는 권력을 향한 무한한 욕망 탓에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맥베스 부부의 이야기지만, '슬립 노 모어'에서는 관객 각자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욕망을 읽어낼 수도, 찐득한 사랑을 느낄 수도, 광기 어린 집착을 체험할 수도, 순탄한 삶을 바라는 평범한 바람을 지켜볼 수도 있다.
무더운 여름날, 어두운 건물에서 인간의 원초적 욕망으로 둘러싸인 서늘한 서스펜스를 느끼고 싶다면 과감히 매키탄 호텔의 문을 두드려보시길. 운이 허락한다면 배우의 손에 이끌려 은밀한 공간에서 비밀을 나누는 '원 온 원'의 기회도 찾아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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