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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체' - AI가 만든 '점액질 사회'에서 살아남기

안지훈|2026-06-25 10:00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싸움, 인간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출처:영화 ‘군체’

(MHN 안지훈 기자) 영화 ‘군체’는 인간의 승리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 승리에는 언젠가 다시 패배할 것이라는 암시가, 이때 전세를 역전시키려면 길고 지난한 싸움을 다시 벌여야 한다는 교훈이, 그리하여 인간의 싸움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으리란 전망이 담겨 있다.

‘부산행’ ‘반도’에서도 좀비와 인간의 대립을 그려낸 바 있는 연상호 감독은 AI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군체’를 구상했다. 둘 이상의 동종 개체가 서로 연결돼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사전적 의미의 ‘군체’처럼 AI 역시 방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학습하고 진화한다. 영화 속에서는 좀비들이 하나의 군체를 이루며 인간을 위협한다.

연상호 감독이 AI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군체’를 AI 시대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영화가 AI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었고, 그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권력과 결합할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에 가깝다.

좀비와 인간의 추격전이 벌어지는 공간은 서울 한복판의 빌딩이다. 특별한 실험실도, 먼 미래도 아니다. 평범한 일상 공간이 순식간에 공포의 공간으로 변한다. AI 역시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검색, 쇼핑, SNS, 생성형 AI 서비스 등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영화 속 좀비들은 점액질을 분비한다. 점액질은 서로를 연결하며 하나의 거대한 신경망을 형성한다. 유기체의 모세혈관 같기도 하고, 컴퓨터의 전산망 같기도 하다. 좀비 한 마리만 생존자를 발견해도 그 정보는 순식간에 군체 전체로 전달된다. 점액질로 뒤덮인 건물 안에서 인간이 감시를 피해 움직일 공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출처:영화 ‘군체’

현실 역시 비슷하다. 우리는 검색 기록과 소비 패턴, 이동 경로, 취향, 대화 내용까지 수많은 데이터를 남기며 살아간다. 플랫폼 기업과 기술 기업은 이 정보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추천 알고리즘을 발전시킨다. 영화 속 점액질은 허구지만, 현실의 연결망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됐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편리함과 효율을 얻는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정보가 특정 권력과 자본에 집중되고, 그 정보가 다시 사람들의 선택과 소비, 관심사를 설계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권력은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더 정교한 서비스를 만들며, 다시 더 많은 정보를 축적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AI는 진화한다. 연상호 감독은 ‘군체’를 “진화하는 좀비와 퇴화하는 인간의 싸움”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속 좀비를 진화시키는 것은 결국 생존자들이 흘린 정보이고, 현실에서 AI를 성장시키는 것 역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다. 영화의 비극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 자체가 상대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출처:영화 ‘군체’

그러나 영화는 절망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연상호 감독은 인간에게도 분명한 탈출구를 남겨둔다. 좀비들이 각자의 정보를 하나로 모아 업데이트하는 진화의 순간이다. 군체는 그 과정에서 더욱 강력해지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취약해지기도 한다. 몸을 떨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는 그 짧은 순간을 생존자들은 놓치지 않는다.

현실의 AI 역시 완성된 기술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반복하며 발전한다. 바로 그 과정이 인간 사회가 윤리와 제도, 책임을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그 시간을 놓칠 때마다 영화 속 한규성(고수 분), 최현희(김신록 분), 최현석(지창욱 분)처럼 누군가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는 승리의 조건은 인간의 개별성이다. 군체는 모두가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반면 인간은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판단한다. 희생과 사랑, 우애는 물론 때로는 이기심마저도 인간만이 가진 복합적인 감정이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계산할 수는 있어도 타인의 고통을 대신 감당하거나 스스로 희생을 선택하는 이유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영화는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감정과 선택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이 완전히 승리한 것은 아니다. 좀비들이 일제히 멈춰 서며 영화는 끝나는 듯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눈을 감고 있던 좀비 하나가 다시 눈을 뜬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좀비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인간 앞에 나타날 것이고, 권세정(전지현) 일행이 치렀던 싸움 역시 반복될 것이다.

AI와 공존하는 시대도 다르지 않다. 기술을 멈추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통제하고,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사용할 것인가다. 결국 ‘군체’가 던지는 질문은 좀비를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아니다. 더 연결되는 시대 속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는가. 영화가 말하는 진짜 장기전은 바로 그 싸움일지 모른다.

출처:영화 ‘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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